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 (문단 편집) === 대외 관계 === 스트로에스네르 정부는 [[미국]]과 긴밀한 군사적, 경제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베트남 전쟁]]에 군대를 파병하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미국도 스트로에스네르의 권력이 유지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당시에는 미국이 [[반공주의]]를 내세우기만 하면 그 어떤 독재정권도 노터치하는 정책을 내건 덕택(?)이었다. 실제로 1962년과 1975년 사이에 미국은 스토로에스네스 정부에 1억 4천 6백만 달러를 지원했고 파라과이 장교들이 미국의 서반구안보협력대학원(WHINSEC)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한 것도 모자라 심지어 미국의 장교들이 파라과이 장교들의 고문 훈련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스트로에스네르 정권이 '라틴 아메리카를 위한 실행 가능한 민주주의 모델이다'라는 희대의 망언을 남기기도 했다. 이러한 우호관계는 [[1986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가 마약 밀매와 돈세탁, 독재에 대한 국제 여론 악화로 인해 스트로에스네르 정부를 독재로 칭할 때까지 유지되었다. 덤으로 스트로에스네르는 [[장제스]] 치하의 [[대만]]과 [[아파르트헤이트]]가 시행 중이던 [[남아프리카 공화국]]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었는데 자국의 군인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타이베이시]]로 유학을 보내기도 했다. 특히 스트로에스네르는 [[일본]]을 숭상하였는데 [[메이지 유신]]과 [[제2차 세계 대전]] 후의 경제 발전에 흥미를 가져 1972년 4월에 일본을 방문하거나 파라과리 현에 있는 일본인 이주자 거주지인 라 콜메나(La Colmena)에도 최소 22번이나 방문한 것은 물론이고 [[메이지 천황]]이 자신과 생일이 같다는 것을 이용해 자신을 '메이지 천황의 환생'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심지어 1989년에 [[쇼와 천황]]이 죽었을 때는 대통령령으로 중앙관청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상복을 입을 것을 명령하기도 했다. 스트로에스네르 집권기의 파라과이와 일본의 관계는 증진되어 일본은 파라과이에 적극적으로 기술 원조를 했고 심지어 당시 파라과이가 받은 외국 원조의 75%가 일본에서 온 것이었다고 한다. 한편 스트로에스네르는 장제스도 존경하여 1986년에는 아순시온에 '장제스 거리'를 만들어 이 거리 주변에 중국식 공원과 장제스의 동상을 세우기도 했다[* 실제로 파라과이는 현재까지도 남미에서 유일하게 대만과 수교한 나라이며 오늘날에도 파라과이는 대만의 수교국 중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덤으로 스트로에스네르는 [[니카라과]]의 독재자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데바일레]]가 파라과이로 망명할 때 받아 주는 행보를 보였으며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에 큰 동정심을 느껴 [[요제프 멩겔레]], 에두아르트 로슈만[* Eduard Roschmann, 1908~1977, [[슈츠슈타펠]]의 [[대위]]급 직위였던 '최상급돌격지도자' 직급을 가졌으며 1943~1944년에 [[라트비아]]의 리가 게토의 사령관을 역임하면서 18시간의 강제노동과 처형, 빈사 상태의 수용자들을 굶주린 개에게 던져주는 등의 만행으로 최소 3천 명(10세 미만 어린이 800명 포함)의 목숨을 앗아간 인물이다. 1948년에 [[아르헨티나]]로 도피해 목재 수출입 회사를 운영하다가 1976년에 [[서독]]이 그를 서독으로 인도하려고 하자 파라과이로 도피했고 1977년 8월 8일에 파라과이에서 사망했다.] 등의 [[나치의 남미 도주|나치 전범들의 망명을 받아주고 파라과이 시민권을 부여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나치와 관련된 논문을 군사 학교를 포함한 학교에 전달하기까지 했고 [[크로아티아]]의 [[우스타샤]] 출신 파시스트들을 위한 '휴식 캠프'도 운영했으며 특히 [[아르헨티나]]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야세노바츠 강제수용소]]의 지휘관 [[딘코 사키치]]와는 절친한 사이였다. 이처럼 스트로에스네르가 나치 전범들을 하도 은닉해 준 나머지 외신들은 종종 스트로에스네르 정부를 "가난한 자의 나치 정권"이라고 비난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